[독자칼럼]율곡이이의 유지사

(전)광주교육연수원 총무부장 윤은상

2021년 04월 16일(금) 10:55
양반집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생활이 어려워 생계를 위해 기생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유지’였습니다. 그녀는 새롭게 부임한 관찰사 율곡이이의 시중을 들게 되는데 그 당시 12살이었습니다. 율곡이이는 유지에게 배움에는 신분이나 귀천 남녀와 위아래가 없으니 언제든지 책을 읽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라고 격려하였다. 유지는 율곡을 무척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몇 해가 지나 율곡이이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9년이 지나 율곡이이가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원접사로 평양으로 가는 길에 잠시 이곳을 들렸을 때 유지는 이이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어린 유지가 아리따운 여인으로 성장하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율곡이이는 무척 반가워했답니다. 9년 만의 재회였지만 서로는 또다시 헤어집니다. 그 뒤 유지는 율곡을 다시 만나게 되면 꼭 고백하리라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유지는 율곡이이가 요양을 위해 누이가 있는 방고지 강 마을에 잠시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머나먼 거리를 밤낮으로 걸어 찾아갑니다.

유지는 율곡이이를 만나 정담을 나누며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율곡이이는 유지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그날 밤 떠나라고 하였다. 유지는 날이 어두워 떠날 수 없으니 하룻밤만 자고 가겠다고 부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둘은 등을 지고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한방에서 잤는데도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율곡이이는 유지와 영영 이별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한양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편지내용을 보고 유지는 너무나도 슬프게 울게 됩니다. 1583년 9월 28일 “병든 늙은 율곡이 방고지 강마을에서 쓰다”라는 제목의 편지였습니다.

황해도에 사람 하나 있어
맑은 기운 모아 선녀자질 타고 났네
마음이며 자태 곱기도 해라
얼굴이랑 말소리도 맑구나
문을 닫은 것 인정 없는 일
같이 눕는 건 옳지 않는 일
가로막힌 병풍이야 걷어치워도
자리도 달리 이불도 달리
사랑의 정 다 못하고 일이 어근나
촛불 밝히고 밤을 지세우네

율곡은 몇백 리 먼 길을 몇일 동안 찾아왔던 유지를 이미 사랑하고 있었으나 병든 자신이 짐이 될까 봐 유지의 사랑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유지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율곡은 유지와의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었던 유지는 곧장 한양으로 올라가 “곡을 하고 3년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율곡이 유지에게 보낸 세 편의 시는 사후 “유지사” 라는 시편으로 만들어져 이화여대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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