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월성서, 키 135cm 여성도 제물로..인신공희 또 확인 -축성은 A.D 300년대, 사서 기록 보다 늦어 김근식 기자 mofnews@naver.com |
| 2021년 09월 07일(화) 11:14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2017년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사례로 인골 2구가 확인된 월성 서성벽에 대한 추가 발굴 결과, 성인 여성 인골 1구를 추가로 발굴했고, 신라 왕성인 월성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을 최초로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월성 서성벽의 인신공희는 국내 유일의 성벽 의례이며, 현재까지 신라가 최초로 축조한 왕성 월성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왜소한 여성이 왜 거기서...=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올리기 전,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성과 건축물이 더 튼튼해진다고 믿는 이 인신공희는 이미 사망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인권 측면에서 가혹한 것은 아니라는 추정이 많았다. “설마 산 사람을...”이라는 기대 섞인 추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성 인신공희에 대해서는 어떤 분석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번에 확인된 여성 인골은 이전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했고, 키가 약 135cm 전후로 체격이 왜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를 상상하면 깊은 슬픔이 몰려온다.
동물뼈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며, 늑골 부위 위주로 선별하여 제물로 바쳐졌다.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조사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이 일괄적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이번에 밝혀진 월성의 축성 작업과 비교한 결과, 이들 인골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하여 묻힌 것으로 밝혀졌다.
▶축성시기 실험결과는 사서 기록보다 늦어= 월성 서성벽 조사는 축성 시기, 토목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크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조된 것으로 등장하지만, 이런 축성 기록은 실제 축조 연대보다 많이 앞당겨진 시기로 여겨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서성벽 발굴조사를 통해 월성은 문헌 기록과 약 250년 차이 나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성 서성벽의 축조 연대는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40여 점에 가까운 가속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 연대 분석에 기반해 이루어졌고, 양자 간의 정합성을 최대한 맞추어 자료의 객관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AMS 연대 분석은 목재, 유기물질 등의 탄소를 측정하여 과거 연대를 검출하는 방법을 말한다.
▶다양한 토목기법= 월성은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졌지만, 그 축조 수준은 토목공학적으로 다양한 축성 기술이 집약되어있다.
먼저,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 등 기초부 공사를 통해 월성 지형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을 다양한 성벽 재료로 사용하여 높고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이 확인되었다. 월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되어, 신라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당시 왕성의 웅장함을 그려볼 수 있다. 지정공법·부엽공법: 성벽 기초부를 견고하게 다져 올리는 작업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월성 서성벽 조사 성과는 7일 오후 4시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 현장설명회로 공개된 후, 다음 날인 8일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학술적 의미를 토론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왕성 월성의 궁궐 배치와 성벽 축조 재료의 자연과학적 분석에 대한 조사,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김근식 기자 mof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