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경기 이천 세도정치의 흔적 김좌근의 고택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mofnews@naver.com
2023년 09월 01일(금) 18:06
남향으로 자리 잡은 한옥가옥으로, 당초에는 99칸이 있었으나, 지금은 담장과 행랑채가 없어지고 안채와 별채만 남아 있다.<사진=대한미디어그룹/대한여성일보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촬영 >
[해양수산일보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나는 경기도 이천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연곡리에있는 고택을 세컨하우스로 사용하고 있어 내가 가끔 수도권에 머무를 때에 이곳에서 만나 지역 역사. 문화를 탐방한다.

오늘은 평상시 가고 싶었던 이천시의 김좌근 고택을 탐방하게 되었다. 인근에 유서 깊은 이천 중리 삼층석탑, 수광리 오름 가마, 신대리 백송, 도립리 반룡송을 들렀다가 그곳을 찾게 되었다.

김좌근 고택은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소일 마을 상단에 있으며, 야트막한 산자락을 뒤에 두고 남향으로 자리 잡은 한옥가옥으로, 당초에는 99칸이 있었으나, 지금 담장과 행랑채가 없어지고 안채와 별채만 남아 있다.

이 집은 영의정 김좌근의 아들이며 고종 때 어영대장와 이조판서를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겸한 별장용으로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정문이 닫혀 있었으나 담장이 열려 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복판에 높다란 솟은 대문과 사랑채, 별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싼 규모 있는 사대부 집 전통가옥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김좌근 고택 사랑채 <사진=대한미디어그룹/대한여성일보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촬영 >

원래 구조는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채를 통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안채는 ‘ㄷ’ 자형으로 중문으로 연결된 사랑채가 있었으며, 바깥쪽은 대문과 연결된 행랑채가 ‘ㄱ’ 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안채와 별채가 서로 떨어져 독립된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으나, 원래는 두 건물 사이에서도 가로막힌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 뒤쪽으로 널마루로 짠 회랑을 달아서 왕래가 편하도록 서로 연결된 구조였다.

고택을 관리하기 힘들었던 후손들이 당시 신흥재벌에게 집을 팔았다. 그런데 회사가 사랑채와 행랑채를 옮기던 중에 부도가 나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2009년에 후손들이 고택과 주변의 땅 10만 1천 500 제곱미터를 서울 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이 고택은 2003년 4, 21일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이천 김좌근 고택은 당시 권문세가의 가옥구조를 잘 보여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본채 앞 뜰에 박혀있는 주춧돌 <사진=대한미디어그룹/대한여성일보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촬영 >

김좌근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3번이나 역임하였으며 “하옥대감”이라 하면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다.

김좌근의 아버지는 영안 부원군 김조순이며, 그의 누이가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이다.

김좌근은 파락호 시절의 흥선대원군에게 용돈을 챙겨주는 여유를 보여 대원군이 집권한 이후에도 명예롭게 천수를 누릴 수 있었으며 사후에는 왕릉 자리로 꼽히는 고택의 뒤 명당에 묻혔다.

그는 마음이 온순하고 성실하여 공평하였으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시기의 핵심인물로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역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

김좌근의 장동 김씨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노론의 명문이었다.

은진송씨, 송시열, 송준길과는 급이 달랐다.

김상용, 척화신, 김상헌, 형제 등으로 시작해 김수홍, 김수홍 형제, 김창집의 6형제 등 누대에 걸쳐 청백리에 문장가로 소문난 집안이었다.

김좌근의 아버지 김조순은 노론이면서도 정조의 신임이 두터워 어린 순조를 맡긴다는 유지를 받은 규장각 각신이었다.

김좌근은 누님인 왕비 순원왕후의 지원을 받아 장동 김씨 세도의 전성기를 누린다.

김좌근을 이야기하면서 ‘나합’ 이야기를 건너뛸 수 없다. 타고난 미모에 노래와 춤이 대단해 김좌근의 총애가 이만저만 각별한 게 아니었다.
본채 뒷 뜰 모습 <사진=대한미디어그룹/대한여성일보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촬영 >

김좌근이 다른 여인을 쳐다본다고 따귀 올리고 그러면서 본인은 다른 남자를 불러들이기 일쑤였기까지는 프라이버시라고 치더라도, 나라 곳간을 제 쌈지 쓰듯 쓰고 시야를 가린다고 민가를 허물었다.

뇌물 받고 죄인을 꺼내주고 돈 받고 벼슬을 팔 지경이니, 삼정승에게나 붙이는 ‘합하’로 불렀다.

아무리 세도 정승의 첩이라도 일개 기생 출신 천첩에게 ‘합하’라고 부르는 것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주 출신이라 ‘나합’이라 했다.
필자의 친구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연곡리에있는 고택을 세컨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한 쉼터 <사진=대한미디어그룹/대한여성일보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촬영 >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mofnews@naver.com
이 기사는 해양수산일보 홈페이지(mofnews.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mofnews.co.kr/article.php?aid=5975352786
프린트 시간 : 2026년 10월 08일 21:5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