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원 칼럼] 향교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 현대 유림에게 묻는다
2025년 05월 16일(금) 18:10
신재원 칼럼니스트
오래된 공원 어귀를 돌면, 조용히 시간을 품고 선 건물 하나가 있다. 바로 ‘향교’다. 한때는 지역의 인재를 길러내고,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정신을 가르치던 교육과 정신문화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오늘날, 향교의 마당은 점점 더 고요해지고, 그 안을 지키는 유림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의 유림들은 꿋꿋이 선현의 정신과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향사(享祀)를 봉행하고, 지역의 어른으로서 인성교육과 선비정신을 전하고자 애쓴다. 이는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유림에게는 몇 가지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먼저, 폐쇄성과 연령 고착화가 있다. 유림 조직은 고령화되어 있고, 외부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 시대 변화에 대한 적극적 소통과 외부와의 교류가 부족하다 보니, 전통은 지켜지지만 대중 속으로 녹아들지는 못한다. 그 결과, 향교는 시민과 단절된 섬처럼 남게 된다.

둘째, 형식에만 머무는 전통 계승이다. 제향이나 의례는 그대로 이어가되, 그 의미와 철학은 충분히 해설되거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향교가 살아 숨 쉬려면 단지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나누고 가르치는 터전’**이 되어야 한다. ‘왜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지켜왔기 때문’이라는 대답만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전통을 설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림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야 할까.
첫째, 열린 유림이 되어야 한다. 학문은 담장을 높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향교, 시민과 호흡하는 유림이 되어야 한다. 선비의 정신은 벼슬을 탐하지 않고 진리를 좇던 '겸손과 책임'의 자세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배우는 유림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유학은 공동체의 덕목과 인성교육에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현대인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풀어내는 공부와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가르치기 위해 배우고, 지키기 위해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미래를 품은 유림이 되어야 한다. 향교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인성문화의 발원지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 인성교육, 청년을 위한 철학 강좌, 지역 어르신들의 품격 있는 쉼터 등으로 기능을 확장한다면 향교는 다시금 지역의 중심으로 살아날 수 있다.

유림은 단지 유복 입은 어른들이 아니라, 전통을 품고 시대와 호흡하는 사람들이다. 유교란 살아 있는 삶의 철학이며, 향교는 그 철학이 깃든 뿌리이다. 우리가 오늘의 유림에게 바라는 것은 ‘지켜낸 과거’보다도 ‘열어갈 내일’이다.

전통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향교의 마당에 다시 아이들의 발자국이 찍히도록
유림의 한마디가 오늘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도록
이제, 그 묵직한 책임을 다시 되새겨야 할 때다.

신재원/ 칼럼니스트 - 해양수산일보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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