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칼럼] 사진이 아니라 발견이다-디카시 심사를 향한 단상 해양수산일보 oceanjournal@naver.com |
| 2026년 02월 25일(수) 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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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당선작들을 보면 솔직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정작 시는 사진의 감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이다. 마치 풍경의 힘에 기대어 겨우 서 있는 문장들을 만날 때면, 디카시라는 장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묻게 된다.
디카시는 원래 ‘이미지와 언어가 만나는 순간의 시’다. 그러나 그 만남의 핵심은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발견의 깊이에 있다. 잘 찍힌 사진은 감탄을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감탄과 울림은 다르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은 때로 시의 자리를 빼앗는다. 이미 완성된 감동 위에 얹힌 문장은 설명으로 미끄러지기 쉽고, 그 순간 디카시는 시가 아니라 ‘사진 후기’로 전락한다.
여기서 우리는 디카시의 본질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디카시는 아름다움을 찍는 장르가 아니라
의미가 숨어 있는 순간을 붙잡는 장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장비도, 구도도, 화려한 배경도 아니다. 평범한 것 앞에서 멈춰 서는 시선이다. 오히려 오래 남는 작품들은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난다. 닳아버린 신발 한 켤레, 비를 맞고 식어버린 의자 하나, 금이 간 컵의 입술 같은 가장자리. 이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물 앞에서 시인의 시선이 번쩍일 때 비로소 디카시는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평범한 것에서 울림을 길어 올릴 줄 아는 시선이야말로 디카시의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되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사진을 심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를 읽고 있는가. 만약 프레임의 화려함이 문장의 깊이를 대신하고 있다면, 그 순간 디카시는 가장 본질적인 자리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디카시는 대개 조용하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독자의 마음을 한 번 늦추고, 읽고 난 뒤 한 박자 숨을 멈추게 한다. 그 힘은 고가의 카메라에서 나오지 않는다. 필터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평범한 것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집요한 시선에서 나온다.
디카시가 앞으로도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더 멋진 풍경을 찾기보다 더 깊이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사진의 경쟁이 아니라 발견의 경쟁이다. 그곳에서 디카시는 다시 시로 돌아올 것이다.
최창호/칼럼니스트 /시인·수필가
해양수산일보 oceanjournal@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