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리 주민과 경향 각지에서 참석한 해남윤씨 종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굴포리 고산사 앞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제막식에 참석한 윤재갑 해남·완도·진도 국회의원의 축사와 이동진 진도 군수, 박금례 진도군 의회 의장, 윤영수 해남윤씨 대종회 회장, 윤성철 고산공 15대 종손의 축사에 이어서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1999년에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굴포리에서 전사했다는 이유로 고산사 사당에 배중손 장군의 사당과 유적비와 동상이 있었으나 용장산성으로 옮기면서 고산사당으로 복원하고 고산 사적비와 시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이곳 굴포리의 둑은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가 1649-1650년 2년의 기간에 약 100ha를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1651년에는 노화도에 130ha 해언전을 고산의 조부인 윤의중 공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고산의 12대 후손인 윤정현 공이 1930년대 초반에 해남군 북일면 금당리에 15만평을 간척 한 바 있다.
우리나라 방조제는 고려시대인 1255년 고종 43년에 국가에서 처음으로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고 세만금방조제 부안 홍보관 에는 1640경에 고산 윤선도가 진도에서 간척을 하였다고 기록된 바 있다.
이 방조제는 높이 3m 길이 380m로 축조되었다. 공이 막은 원래의 둑을 1946년 보강한 것이 지금의 18번 국도가 지나는 방조제이다. 주민들은 이곳을 ‘고산의 둑’이란 부르고 있다.
이곳 굴포리의 둑 공사에 2년이 걸렸다. 그 이유는 썰물 때 둑을 쌓으면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무너지고, 또 쌓으면 또 무너지고 하는 어려운 공사였기 때문이다.
굴포리의 간척은 현실을 직시하고 이용할 줄 아는 경세치용 사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공은 당시에 심한 기근으로 주민들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이 둑을 막아 농지를 조성하였다.
축조 후 많은 주민들이 굴포·남선·백동·신동의 4개 마을로 들어와 농사를 지었다. 이 곳 4개 마을 주민들은 공의 구휼에 감사드리면서 이곳에 고산사당을 지어 그 은공을 기리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매년 정월대보름날 고산 감사제와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윤은상 기자 mofnews@naver.com
2026.10.08(목) 22: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