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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말이 쉽게 쏟아지는 시대일수록 문학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언어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말이 꼭 필요한 말인지, 누군가의 마음을 살리는 말인지, 아니면 잠시의 감정에 기대어 내뱉은 말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 말이다.
문학의 언어는 설득보다 이해를 먼저 생각해 왔다. 누군가를 앞세우기보다 마음을 나란히 두는 방식으로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은 속도보다 깊이를, 소리보다 울림을 택해 왔다.
공동체 안에서의 문학은 더욱 그러하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하루를 바꿀 수 있고, 한 줄의 문장이 오랜 관계를 이어주기도, 흔들리게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문학인은 잘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더 조심스럽고, 더 신중해져야 한다.
소위 문학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엄격한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말로 세상을 다루는 일을 선택한 만큼, 그 말이 향하는 방향과 남기는 흔적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문학인은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 예민함을 타인을 향한 칼날로 쓰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자기 말에 취하지 않고, 자기 주장에 앞서지 않으며, 말의 힘보다 말의 태도를 먼저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문학인이라는 이름 앞에 가장 먼저 놓여야 할 자세일 것이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항상 옳은 말을 해서가 아니라, 쉽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여백으로 말보다 깊은 것을 전해 왔다. 그래서 문학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언어 앞에서 늘 한 번 더 멈춰 서는 태도를 요구한다.
우리는 종종 말을 많이 해야 진심이 전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문학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말을 아낄수록 마음은 또렷해지고, 말을 덜어낼수록 책임은 분명해진다는 것을 문학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이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의 말이 쉽게 오해되고 감정이 앞서기 쉬운 시간 속에서, 문학은 조용히 묻는다. “이 말은 정말 필요한가.” “이 말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문학이 공동체 안에서 끝까지 지켜야 할 역할일지도 모른다. 말을 아낄 줄 아는 문학, 침묵마저 의미가 되는 언어. 그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학의 얼굴이다.
이근모/ 시인.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회장
해양수산일보 oceanjournal@naver.com
2026.10.08(목) 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