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칼럼]감성이 사라진 사회, 인간이 사라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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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칼럼]감성이 사라진 사회, 인간이 사라지는 사회
  • 입력 : 2025. 12.22(월) 18:06
  • 해양수산일보
최창호/ 시인. 칼럼니스트
우리는 요즘 참 바쁘다. 바쁘게 경쟁하고, 바쁘게 비교하며, 바쁘게 살아남으려 애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에 대해선 그리 바쁘지 않다. 삶의 목적이 아니라 ‘성과’만을 말하는 사회, 가슴이 아니라 ‘데이터’만을 신뢰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점점 인간적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워진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은 기계처럼 움직이면서도, 기계 만큼의 정확함도 갖지 못한 채 서로를 밀어내며 버티고 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성이라는 명분으로, 감정은 불필요한 잡음처럼 취급된다. “슬퍼할 시간도 없다”, “느끼는 건 사치다”, “예술은 한가한 사람들의 일이다”라는 말이 너무 쉽게 소비된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쌓여 사회의 공기가 된다.그 공기 속에서 사람이 조금씩 굳어간다.

문학은 이런 시대에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문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고.하지만 이 질문을 귀담아 들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책은 점점 뒤로 밀리고, 시는 특별한 사람들이나 쓰고 읽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삶이 바쁘다며 책 한 권 펼칠 마음의 자리를 비워두지 않으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적인 존재’라고 부른다. 실은 생각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음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음악은 사람의 가슴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쓰다듬던 동행이었다. 이제 음악은 종종 소비되고 버려지는 ‘배경음’으로 밀려난다. 감동보다 조회수가 먼저이고, 울림보다 유행이 중요해졌다. 심장을 움직이는 음악보다, 알고리즘이 선택한 음악에 길들여진 사람들. 그 속에서 우리의 감성은 점점 편리해지고, 동시에 점점 더 메말라간다.

문화와 예술은 원래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삶이 거칠어질수록 그 방어선은 더 단단해져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문화는 예산이 남으면 지원하는 항목이 되고, 예술은 이해득실로 평가되는 사업이 되고 있다. 사회가 위기를 말할수록 정작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것이 문화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를 넘어 슬픈 현실이다.결국 이 말은 이렇게 번역된다.“지금은 인간다움보다 돈이 더 급하다.”

하지만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과연 경제만일까.빵이 인간을 살린다면, 영혼은 무엇으로 숨 쉬는가.

한 편의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를 견디게 하는 이유가 된다. 무대 위에서 울리는 북소리 하나가 한 사람의 심장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 된다. 한 곡의 노래가, 한 장의 그림이, 한 편의 공연이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이것이 문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삶을 꾸미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없는 사회는 삭막해진다.그리고 삭막해진 사회는 결국 서로를 향해 더 잔인해진다.감성을 잃은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며, 결국 공동체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지워버린다. 그 순간 우리는 잘 조직된 사회에 살고 있을지는 몰라도, 더 이상 따뜻한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한다.“우리는 과연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편리함은 늘었지만 마음은 더 외롭지 않은가.정보는 넘치지만 생각은 오히려 빈약해지지 않았는가.
환하게 불이 켜진 도시 속에서, 정작 사람의 심장은 더 어두워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화려한 건물이나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마음이다. 문화는 그 마음이 부서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손이다. 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기록하고, 음악은 영혼의 진동을 지켜주며, 예술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게 한다.

문화가 살아 있는 사회는, 결국 사람도 살아 있는 사회다.서로를 향해 조금 더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사회,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차릴 수 있는 여유가 남아 있는 사회, 슬플 때 울 수 있고 기쁠 때 웃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허락되는 사회. 그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문화와 감성이다.

우리는 지금, 다시 인간다운 세상을 꿈꿔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의 중심에는 반드시 문화가 있어야 한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의 목소리도 사라진다. 그때 남는 것은 잘 굴러가는 시스템일지 모르지만, 거기엔 더 이상 인간의 숨결이 없을지도 모른다.

최창호/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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