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이름 없는 향기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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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이름 없는 향기에 기대어
  • 입력 : 2026. 03.13(금) 13:26
  • 해양수산일보
이근모/ 시인.수필가
해창만의 바람이 부드러워지는 계절이면 사람들은 으레 화려한 꽃소식에 먼저 귀를 기울입니다.
매화의 고결함이나 장미의 매혹적인 향기 앞에 발길을 멈추고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시인의 눈길은 가끔 담장 밑 잡초라 불리는 것들의 낮은 키에 머물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쓸모없거나 번거로운 존재를 '잡초'라 규정짓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잡초로 태어난 풀은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편의에 의해 이름을 얻지 못했거나, 원치 않는 곳에 피어났다는 이유로 홀대받을 뿐입니다.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강아지풀이나, 논둑길에 무심히 피어난 명아주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들도 치열한 생의 의지로 대지를 뚫고 올라온 엄연한 생명의 주역입니다.

비 온 뒤, 젖은 흙냄새와 섞여 올라오는 비릿하면서도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화려한 꽃향기처럼 코끝을 자극하지는 않지만,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마음의 소란을 잠재우는 힘이 있습니다.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온 산야를 푸르게 물들이는 겸손함이 그 향기 속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넉넉한 마음이란 눈에 띄는 화려함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것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일 것입니다. 꽃 향기에 취하는 것이 '환희'라면, 이름 없는 풀의 향기를 느끼는 것은 '자비'에 가깝습니다.

나의 시(詩) 또한 누군가에게 화려한 꽃이기보다, 지친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들풀의 향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향기를 내뿜는 저 낮은 존재들을 보며 비로소 마음 한 자락을 비워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향기가 가장 멀리 간다는 진리를, 오늘 저 이름 없는 잡초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근모/제14대 광주문인협회 회장 · 시인.수필가
해양수산일보 oceanjournal@naver.com